장애인 접근성을 높이는 핀테크 기술에 대하여
2025.03.05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는 핀테크 기술에 대하여

by 길진세 (BC카드 AI Biz Lead PM)


들어가며


2025년 6월부터 유럽의 접근성법 (EAA,The European Accessibility Act)이 발효된다. 한국에서 먼 유럽의 이야기이니 국내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마이데이터 제도가 유럽의 데이터 관련 법규로부터 시작된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의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 법은 장애인의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보장하려는 유럽 연합의 공약에서 시작되었다. 2015년 12월 법안이 제안되었고 2019년 유럽 연합 이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장애인이 광범위한 일상 제품과 서비스에 동등하게 접근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법이다. 

법안이 발효되면 기업은 자사의 서비스를 장애인이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EAA의 영향으로 유럽의 핀테크 서비스들은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핀테크 기술이 장애인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살펴보고 참고할 수 있는 점을 확인하려 한다.


유럽 핀테크 업계의 EAA 관련 대응


1886년 설립된 Banca Sella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은행으로 지점수가 약 300개에 2,400명 이상이 근무하고 있는 대형은행이다. 이탈리아 최초로 인터넷 뱅킹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은행에서는 2024년 10월, 자국내 인쇄 서비스 업체인 Arti Grafiche Parini사가 개발한 촉각 식별 도구인 TQ Braille(점자)를 도입했다. 이 서비스는 간단하지만 시각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이다. 정상인들은 복잡한 URL 대신 QR을 읽어 빠르게 웹페이지나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QR을 스마트폰으로 읽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TQ Braille은 QR 주변에 점자를 프린트하는 간단한 아이디어이다. 시각장애인은 QR의 위치를 확인한 후 Android의 TalkBack, iOS의 VoiceOver 와 같은 스크린 리더 시스템을 통해 정보를 음성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이탈리아에는 전체 인구의 3.3%에 해당하는 약 200만명의 시각장애인이 있으며 유럽 전역에는 3천만명이 있다고 한다. Banca Sella 은행은 자행의 각종 인쇄물에 이를 적용하여 호평 받고 있다.

영국의 유명한 인터넷 전문은행인 Monzo 는 2024년 12월 17일부터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를 시작했다. 온라인 통역 서비스인 SignLive와 협력하여 청각장애인이 수화로 Monzo의 고객지원팀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SignLive의 대표는 실제 청각장애인으로 은행업과 사기방지교육을 받은 118명의 수화 통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모든 비용은 무료이다. 

핀테크가 발전하면서 처음부터 장애인의 금융포용성 강화와 재정적 독립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된 플랫폼도 있다. 미국의 핀테크 플랫폼 Purple이 좋은 예이다. Purple은 제휴 은행을 통해 계좌개설, 직불카드 발급을 지원하고 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앱을 제공한다. 국내 하나금융지주 산하 ‘핀크’와 유사한 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특징은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기능에 있다. 시각장애인도 계좌잔액, 거래내역을 확인하기 쉽도록 화면의 내용을 읽어주는 Voice over 기술을 제공한다. 몸을 움직이기 힘든 장애인을 위해서 터치 없이 뱅킹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음성기반의 네비게이션도 제공하며 색맹이나 저시력 사용자를 위해 앱 내 인터페이스의 고대비와 텍스트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기술적인 부분 이외에 놀라운 것은 상품 측면에서도 장애인을 위해 설계했다는 것이다. Purple 사용자에게는 Qualified Disability Expense(QDE) 스마트 라우팅이라는 서비스가 지원된다. 지출이 장애 관련 비용인 경우 자동으로 세제 혜택이 적용되는 계좌에서 결제되도록 앱이 조정해주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보조생활수당 자산한도를 초과하지 않도록 월말에 자동으로 자금을 이체해주는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 내 50개주에서 120만명 이상의 장애인이 사용 중이다.


마치며


장애인 접근성을 논의할 때 항상 나오는 ‘커브컷 효과(Curb Cut Effect)’라는 말이 있다. 장애인을 위해 설계된 기능이 예상보다 광범위한 계층에 혜택을 주는 현상을 말한다. 1970년대 미국 버클리에서 장애인 권리 운동가들이 시작한 턱 낮추기 (커브컷) 운동에서 유래했다. 보행로의 턱을 낮춰서 휠체어 사용자의 이동을 편리하게 하려 했는데 유모차, 자전거까지 사용이 편리해진 현상이다. 유럽의 EAA 로 인해 많은 금융/핀테크 서비스들이 장애인을 위해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는 사실 고도화되면 일반인들에게 도움이 될 기술이 많다. 어려운 금융을 기술로 풀어나가며 모든 사용자에게 커브컷 효과를 가져오길 기대해보며 글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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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세
통신사와 카드사에서 20년째 핀테크를 접하고 있습니다. 토스카드, 인터넷전문은행 카드계 구축, 정부재난지원금의 PO를 했고, 현재는 BC카드의 AI 비즈니스 전략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브런치에 핀테크와 직장생활에 대한 글을 씁니다. '핀테크 트렌드 2024', '왜 지금 핀테크인가'라는 책과 몇 편의 핀테크 관련 논문을 집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