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실손보험개혁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by 김경민(CJ올리브영 신사업TF)
실손의료보험 개혁안은 결국 지급의 문제다
2025년 1월 발표된 실손의료보험 개혁안은 의료체계 정상화와 보험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목표로 기존 상품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습니다1).
개혁안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과잉 진료 우려가 큰 비급여 항목을 ‘관리 급여’로 지정하고, 가격 및 진료 기준을 설정하여 90~95%의 높은 본인 부담률을 적용한 후 실손보험 보장 대상에서 제외합니다. 또한 실손보험금을 받기 위해 건강보험적용 진료를 함께 받으면 그 진료에는 건강보험료 지원을 하지 않아, 실손보험을 받더라도 본인 부담률이 커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개혁안의 배경에는 보험료 공정성 문제와 의료 자원 남용에 대한 우려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결국 보험금이 지급될 대상을 판별하고, 올바른 금액을 지급하는 문제에 대해,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준을 강화해서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실제 데이터에 따르면, 상위 9%의 가입자가 전체 보험금의 80%를 수령하고 있으며, 2024년 기준 비급여 항목 지급액만 연간 12조 원에 달해 전체 보험금의 68%를 차지합니다. 이러한 수치는 언뜻 보기에 정책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여집니다2).
하지만 이런 정책은 다른 비효율을 낳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도덕적 해이 없이, 필요한 혜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기준이 까다로워지고, 부담은 커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높아지는 AI 접근성, 더 정밀한 판별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대상 판별과 적정 지급의 문제는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모든 보험사가 마주하는 문제입니다. 보험사들은 지급 효율화를 위해 프로세스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선 보험금 지급 프로세스를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보험금 지급은 크게 4가지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일단 청구서류를 제출합니다. 보험계약자 또는 수익자가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 보험사가 서류를 접수하고, SMS로 접수 사실을 통보합니다. 보험사는 제출된 서류를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현장 조사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이런 조사와 검토가 마무리되면 심사 결과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게 됩니다.
이런 프로세스 중 보험사의 비용을 크게 잡아먹는 영역은 ‘지급 사유를 조사하는 단계’입니다. 보험금 지급이 지연되는 사유를 조사했을 때, 생명보험은 82.9%, 자동차보험은 95.9% 등 지급사유를 조사하는 단계의 영향으로 보험금 지급 및 심사가 지연된다고 나타났습니다. 다시 말해, 보험금을 줄 대상이 맞는지 판별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금전적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것입니다3).
그래서 보험사들은 AI 기술을 보험금 지급 대상을 판별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수작업 중심 청구 심사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부정 청구를 탐지하는 데도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었습니다. 이것이 보험사의 비효율을 가져오는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기술을 통한 보험 판별 사례
실제 보험사들이 AI와 기술을 활용해서, 지급 대상을 선별하는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미국 Travelers 보험사의 드론 활용 손해 평가
Travelers 보험사는 AI 기반 드론 기술을 활용하여 주택 및 건물 피해를 신속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손해 평가 방식은 보험 조사관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피해를 조사하는 형태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러나 Travelers는 드론을 이용한 항공 촬영과 AI 분석을 결합하여 보다 빠르고 정확한 손해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였습니다.
드론으로 현장을 촬영한 후, ResNet-152 AI 모델을 활용해 피해 정도를 자동 분석합니다. ResNet-152는 딥러닝 기반의 이미지 인식 모델로, 건물의 구조적 손상, 지붕 파손, 홍수 피해 등의 패턴을 자동으로 분석해주는 모델입니다. 기존 육안 조사 방식일 때, 한정된 인력으로 수일에서 수주가 걸렸다면, 더 짧은 시간으로 34% 더 정확한 피해 평가가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Travelers는 AI 기반 드론 기술을 활용하여 손해 평가 속도를 대폭 향상시키고, 보험 청구 처리 프로세스를 혁신적으로 개선했습니다.
2. 영국 Tractable의 자동차
자동차 사고 후 수리비 산정 과정은 보험업계에서 가장 복잡한 절차 중 하나입니다. 기존에는 인간 감정사가 차량 손상 사진을 직접 분석하고, 수리 비용과 부품 교체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접근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으며, 청구 처리 속도를 저하시킨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ractable이 개발한 "Perceptual MAE(Mean Absolute Error)" AI 시스템은 자동차 손상 분석을 자동화하고, 보다 신속하고 정밀한 비용 예측을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Perceptual MAE는 자율 학습(Auto-learning) AI 기술을 활용하여 차량 손상 이미지를 분석하고, 손상 부위와 수리 필요성을 즉각적으로 판별합니다. 이 과정에서 2,800만 건 이상의 자동차 수리 데이터를 학습한 이 시스템은 0.5초 만에 손상된 부품의 교체 필요 여부를 판단하고, 예상 수리 비용 및 공임을 산출합니다.
AI가 기존 감정사의 주관적인 평가 과정을 대체하면서, 보험 청구 승인 시간이 평균 11일에서 6시간으로 대폭 단축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보험사와 소비자 모두 더욱 신속하고 투명한 청구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자연어 처리(NLP) 기반의 의료 데이터 분석
자연어 처리(NLP) 기반의 의료 데이터 분석을 통해 보험 청구서, 진료 기록, 처방전 등의 문서를 자동으로 분석하여 환자의 실제 치료 내역을 파악하고, 부정 청구 가능성이 있는 항목을 식별하는 기술을 도입한 기업 사례로는 Ping An Insurance(중국 평안보험)가 있습니다.
Ping An Insurance는 안면 인식, 음성 및 표정 인식 등 첨단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보험 인수, 보험금 청구, 대출 서비스 등 다양한 업무를 디지털화하였습니다. 특히, 자연어 처리 기술을 통해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보험 청구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 도입으로 보험 사기 탐지와 청구 처리 속도 향상 등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또한, 카카오헬스케어는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의료 경험과 병원 시스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의료 데이터 분석 및 관리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솔루션은 의료 문서의 자동 분석을 통해 보험 청구 프로세스의 효율성을 높이고, 부정 청구를 방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4).
규제에 앞서 기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처럼, 자연어 처리 기술부터 다양한 AI 기법을 활용한 의료 데이터 분석은 보험 산업에서 청구 심사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부정 청구를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실손보험 개혁은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과 의료 자원의 효율적 운영이라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 보험사, 의료계가 각각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만큼, 단순한 비용 절감 논리만으로 접근해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며 그로 인한 갈등 또한 작지 않은 상태입니다.
궁극적으로 실손보험 개혁이 보험료 공정성을 높이고, 의료 남용을 줄이며, 필요한 사람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기술과 정책이 함께 발전하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AI는 그 길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을 도구일 수 있지만,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선택과 합의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실손보험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서 등장하는 기술 혁신이 우리의 비효율을 줄이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실손보험 개혁과 AI 기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갈 것인지, 그리고 그 변화가 보험업계와 소비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끝”.
<각주>
1) 의료체계 정상화와 국민 의료비 부담 완화 위한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논의 (보건복지부, 2025.01.09)
2) 실손보험 보장한도 5천만원→1천만원으로 축소 (뉴스핌, 2025.01.09)
3) [분석] 보험사 신뢰도 떨어뜨리는 보험금 지급 문제 (더리브스, 2024.10.02)
4) 카카오헬스케어 : AlloyDB 및 Google Cloud 플랫폼 활용을 통해 의료기관의 의료 데이터를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 고성능 데이터 플랫폼 운영 (Google Clo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