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월렛은 어떻게 변화할까
by 길진세(BC카드 M-TF)
들어가며
작년 금융∙핀테크 업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뉴스는 단연 애플페이의 국내 출시 소식이다. 처음 애플페이가 발표된 것이 10년 전인 2014년임을 감안하면 국내 시장 출시는 생각보다 늦다. 국내 아이폰 유저 모두가 학수고대하던 애플페이 국내 출시는 왜 이렇게 지연된 것일까? 많은 이들이 수수료 문제와 결제 인프라를 주요 원인으로 찾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국내 결제 사업자 사이에서 자체 디지털 월렛(Wallet)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 지금도 여러 금융사부터 단말 제조사까지 치열하게 이어지는 이 디지털 월렛 경쟁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고, 앞으로는 어떻게 전개될지 살펴보자.
애플페이의 등장과 삼성페이의 대응
애플페이는 다들 알고 있듯 애플 생태계 전체에서 독점적으로 사용되는 결제수단이다.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 맥북에서 동일한 계정으로 카드결제를 할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NFC를 활용하며 애플의 생체인증 기술인 Face ID, Touch ID로 인증한다. 국내에서는 현대카드와의 독점 제휴로 지난 2023년 3월 출시됐다. 타 카드사와도 제휴할 예정이라는 보도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다.
애플페이가 등장하자 다급해진 건 삼성페이였다. 삼성전자는 2016년 갤럭시S6모델에 삼성페이를 처음 탑재한 바 있으나 갤럭시 시리즈의 주요 기능으로만 간략히 소개하고 있던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페이는 기존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미 국내 오프라인 간편결제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그러나 애플페이 출시가 가까워오자 삼성전자도 삼성페이에 대한 대대적인 광고를 개시했다. 재미있는 점은 광고 내용에서 결제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항공권이나 학생증 등 일종의 전자증명서 기능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직접 대기만 하면 결제가 이루어지는 하드웨어 기반의 간편결제 서비스가 애플페이-삼성페이 간 경쟁 구도로 이어지자 네이버페이 등 국내 빅테크계 간편결제 서비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존 빅테크 간편결제 서비스는 바코드나 QR코드를 생성하기 위해 전용 앱을 구동해야 하는 절차가 불가피했기에 고객의 사용성 측면에서 애플페이와 삼성페이에 비해 경쟁 열위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국내 빅테크들은 삼성전자와 제휴관계를 맺고 자사 간편결제 서비스 구동 방식에 삼성페이 방식을 추가했다. 비록 제휴관계에 따른 비용이 수반되지만, 변화하는 간편결제 패러다임에 대응하기 위한 차선책이었다.
이처럼 국내 시장에서 간편결제를 넘어 디지털 월렛으로서 범용성을 확보해 나가던 삼성페이는 2024년 2월, ‘삼성월렛(Samsung Wallet)’으로 서비스 명칭을 변경했다.
디지털 월렛을 향한 변화
삼성월렛으로의 변화는 표면적으론 애플페이 견제가 그 목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결제산업이 향후 디지털 월렛 산업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한 견제 심리 또한 크게 작용하고 있다.
디지털 월렛이라는 말이 여전히 어색할 것이다. 사전적으로 디지털 월렛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기업이 디지털로 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를 말한다. 개인 사용자는 디지털 월렛을 마치 실제 지갑처럼 활용할 수 있다. 우리는 지갑 안에 신분증, 신용카드, 현금, 아파트 출입키 등 다양한 것들을 넣어둔다. 디지털 월렛 또한 전자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것들을 담아둘 수 있다.
또한 이미 많은 사람들이 NFC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을 통해서 교통카드를 대체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블록체인을 활용해서 모바일 운전면허증을 앱으로 구현해서 출시한 바 있다. 디지털 월렛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개별 사업자들에 의해 빠르게 구현되고 있으며 향후 결제 산업의 메인 플레이어는 이러한 개별 월렛 구성요소를 하나의 디지털 월렛으로 통합한 사업자가 될 것이다.
디지털 월렛의 확대
디지털 월렛은 새로 나온 개념이 아니다. SK플래닛에서 출시한 시럽(Syrup), kt의 클립(Clip) 서비스가 기억나는가? 클립은 2022년 6월 서비스를 종료했는데 이전에는 올레마이월렛(olleh my wallet)과 모카(Moca)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통신사가 주도한 이들 디지털 월렛은 한때 스마트폰 안에 선탑재(Pre-loading) 되어 출시되어서 많은 사용자를 모을 수 있었다. 이들이 출시된 2011~2012년은 디지털 월렛 개념이 빠르게 퍼진 시기였다. 애플에서 애플월렛이 출시된 시기도 이즈음이다. 아이폰으로 인해 국내 생태계가 크게 변하면서 통신사에서 먼저 디지털 월렛의 중요성을 인지한 것이다.
이후 빅테크가 자연스럽게 디지털 월렛 영역을 파고 들었다. 2천만명 이상의 활성사용자를 확보한 토스는 앱 내에 본인인증 기능과 결제 기능을 탑재했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도 본인인증, 신용카드 영수증 정리, 공과금 고지서 관리 등의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우리가 지갑에 우겨 넣고 다니던 것들이 디지털 형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암호화폐를 보관하는 셀프 커스터디(Self-Custody) 서비스도 디지털 월렛의 새로운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내 대형 거래소인 빗썸과 두나무도 자체 지갑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상자산을 편리하게 타인의 지갑으로 전송하고 구매한 NFT를 보관하는 기능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월렛은 전통적인 자산을 넘어서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마치며: 결제 이후 디지털 월렛의 방향
2024년 7월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페이먼츠 인텔리전스(PYMNTS Intelligence)는 유럽과 미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디지털 월렛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70%가 디지털 월렛을 사용 중이라고 답했다. 월렛 제공업체 중 삼성월렛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전체적으로는 삼성월렛, 구글월렛, 애플월렛의 순이었다. 삼성월렛은 코로나 예방접종 기록, 운전면허증, 여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결제를 넘어 디지털 월렛의 파급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성이 커지는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 체감하는 디지털월렛의 파괴력은 아직 크지 않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테스트 사업이 2024년 말부터 본격화될 예정이다. 이 테스트에서는 한국은행이 주도하여 종이상품권과 각종 카드 형태의 바우처를 하나의 앱으로 소지할 수 있는 월렛을 개발할 예정이다. 또 SK텔레콤과 안랩으로부터 가상자산과 NFT를 중심으로 하는 디지털 월렛이 개발될 예정으로 국내에서도 확대될 전망이다.
초기 월렛이 결제 중심이었다면 디지털 월렛은 다양한 사용처를 개발하며 확산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핀테크의 여러 개념과 기술이 디지털 월렛으로 통합되고 있다고 하겠다.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지켜보도록 하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