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판분리, 비교 플랫폼, 그리고 금융사의 미래
2024.11.18

제판분리, 비교 플랫폼, 그리고 금융사의 미래

by 길진세(BC카드 M-TF)


들어가며 : 제판분리란 무엇일까


작년(2023) 10월, 서울 핀테크 위크에 연사로 나온 토스의 이승건 대표는 ‘제판분리’가 소비자 효용을 이롭게 한다는 발표를 했다. 제판분리라는 말 자체가 처음 듣는 이들에게는 생소한 말이다. 제판이라는 표현 때문에 출판업계의 용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사실 제판분리는 보험업계에서 주로 쓰던 말이다. 제조와 판매를 분리한다는 것으로, 보험사 본사는 경쟁력있는 상품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판매는 자회사(법인보험대리점, GA(General Agency))를 통해서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제판분리는 2023년 IFRS 17(국제보험회계기준)이 국내에 적용되면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보험사가 가지고 있던 전속 설계사 조직(영업조직)을 자회사로 이관하면서 인건비와 점포운영비등 고정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회계상 보험계약 서비스마진 (CSM, Contractual Service Margin) 확보에 유리하다는 것이 보험업계에서 제판분리가 부각된 이유였다. 또 GA를 만들면 제휴한 여러 회사의 상품을 모두 판매할 수 있으니 보험업계에서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토스나 네이버페이 같은 빅테크/핀테크가 말하는 제판분리는 비단 보험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이미 핀테크 플랫폼들은 자사 앱 위에서 다양한 금융상품을 유통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토스를 통해서 펀드를 가입하고 네이버페이를 통해서 카드를 발급받는 경험을 해본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미 제조와 판매가 분리되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는 한곳에서 모아서 볼 수 있으니 좋지만, 상품을 판매하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어진다. 팔긴 팔아야겠는데, 자사 앱의 채널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은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핀테크 앱 안에서도 고객의 터치를 부르는 좋은 위치를 차지하려면 추가 수수료를 줘야 하니 금융회사로서는 난감하다. 금융 상품을 만드는 건 자신이지만 판매 촉진을 위해서는 핀테크 앱을 통해야 한다. 고객의 채널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채널 주도권 경쟁을 하는 가운데 정부에서는 금융상품의 비교 서비스를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하고 있다. 


민관에서 장려하는 금융 ‘비교’ 서비스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다양한 ‘비교’ 서비스가 정부차원에서 추진되기 시작했다. 먼저 신용대출 비교 서비스가 2022년 하반기 출시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신용대출을 해 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예전에는 은행 앱 또는 은행 현장을 돌아다니며 제출한 본인 정보를 기반으로 금리와 한도를 산정해야 했다. 은행에 서류를 제출하면 NICE나 KCB 등을 통해 개인신용도를 확인하며 각 전산상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 사람의 신용도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단기간(은행별로 정해둔 기간)에 복수의 은행에서 평가기관으로 신용조회가 반복되면 다음 차례 은행에서는 신용대출 심사 자체를 거부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신용대출을 짧은 기간에 계속 알아보는 것을 위험하다고 은행 자체적으로 평가한 까닭이다. 필자 역시 처음 신용대출을 받을 때 직접 발품을 팔아 가장 좋은 조건을 알아 보려다 포기해야 했다. 애써 여러 군데의 은행에서 금리와 한도를 받아서 처음 확인한 은행이 금리와 한도가 제일 좋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막상 첫번째 은행에 가서 대출을 실행하려 하면 금리와 한도가 달라진 경우도 있었다. 확인한 시점 이후 기준금리가 바뀌었다는 이유이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대출비교 서비스가 얼마나 고객에게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신규 대출 뿐만 아니라 기존에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도 편리하게 대환 대출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플랫폼도 2023년 오픈했고, 2024년 1월 부터는 주택담보대출, 아파트 담보대출도 손쉽게 갈아탈 수 있는 서비스가 출시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핀테크 앱을 통해 손쉽게 이루어진다. 주택담보대출 갈아타기 같은 경우 워낙 인기가 좋다보니 은행이 준비한 한도가 소진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2024년 1월 19일부터는 자동차보험과 용종보험을 비교하는 보험상품 비교 추천서비스가 오픈했다. 


제판분리, 비교 플랫폼. 그리고 금융사의 미래.


이렇게 비교 플랫폼이 정부차원에서도, 민간 차원에서도 활발하게 생겨나고 있는 점은 이승건 대표의 말처럼 분명 소비자에게 고무적인 일이다. 과거 핀테크/빅테크사들이 크지 않았던 시절에는, 어떻게든 금융사를 입점시켜야 했다. 금융사의 협업 없이는 핀테크가 확대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이제 막 시작하는 마트가, 유명 식품을 입점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던 핀테크/빅테크가 이제는 거대해져서 고객 채널을 쥐고 당당히 제판분리를 주장하는 중이다. 금융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본질은 돈, 숫자이다. 숫자로 표현이 되니, 정량적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교 플랫폼이 자리를 잡고 제판분리가 가속화되며 금융사가 상품을 공급하는 역할만 하게 되면 금융사 수익성이 악화되고 금융사도 대응에 나서게 될 것이다. 이미 보험업계에서는 외부의 빅테크/핀테크 앱을 통해 판매되는 상품보다 자사에서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방안이 나오고 있다. 원래도 채널별로 수수료 차이가 컸던 업계이다. 같은 방식으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도 이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숱한 견제와 협상이 있었다. 핀테크 스타트업들도 금융권의 이런 상황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조심스러웠다. 필자는 그래서 이승건 대표의 ‘제판분리’ 언급이 놀라웠다. 핀테크가 채널을 가져가겠다는 선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금융사는 채널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상품 제조사로 남게 될까?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금융사 독자 채널 전용 상품의 강화’라고 생각한다. 특정 채널이 강력한 주도권을 쥐고 금융사에 영향을 미친다면 금융사는 채널별로 판매 상품을 다각화하여 대응하게 될 것이다. 일례로 모 카드사에서는 자사의 앱에서만 신청할 수 있고 자사의 앱을 통해 결제할 때에만 할인되는 전용상품을 출시하여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제판분리에 이어 금융상품비교가 활성화될수록 금융사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고객과 금융사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선의의 경쟁이 계속되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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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세
통신사와 카드사에서 20년째 핀테크를 접하고 있습니다. 토스카드, 인터넷전문은행 카드계 구축, 정부재난지원금의 PO를 했고, 현재는 가맹점 지향 신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브런치에 핀테크와 직장생활에 대한 글을 씁니다. '핀테크 트렌드 2024', '왜 지금 핀테크인가'라는 책과 몇 편의 핀테크 관련 논문을 집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