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 코인 열풍에 내재된 거버넌스 변화의 시사점
2024.08.16

밈 코인 열풍에 내재된 거버넌스 변화의 시사점

by 김용영((주)엠블록 CSO)


밈 코인은 인터넷에 유행하는 상징 또는 이미지를 토큰화한 암호화폐다. 도지코인, 시바이누 등이 대표적인데 다른 자산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부류의 투자자산이다. 최초의 밈 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도지코인은 지난 2013년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를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렇게 시작된 밈 코인은 현재 암호화폐 시장에서 주요한 한 축으로 성장했다.

다른 자산군에서는 볼 수 없는 만큼 밈 코인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하다. 혹자는 암호화폐 시장의 발전을 위한 커뮤니티의 강력한 동력이라고 평가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관심 경제의 실현이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같은 마케팅 또는 시장 관점 외에 조직 운영이나 거버넌스 측면에서도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가장 일반화된 기업과 조직의 형태인 주식회사를 넘어 관심에 기반해 지지를 표명하는 새로운 집단 운영 방식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의 암호화폐 업계 부활시킨 밈 코인


최근 밈 코인의 유행은 지난 2022년 암호화폐 업계에 터진 두번의 사건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2022년 테라 프로젝트의 몰락과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파산은 비트코인 가격을 반토막 내면서 막대한 타격을 줬다. 테라와 FTX 모두 회복이 불가능할 수준의 피해를 입었으며 FTX와 밀접한 관계였던 솔라나도 최고점 대비 97%까지 가격이 추락했다.

이처럼 바닥까지 떨어졌던 솔라나를 다시 일으켜세운 것이 바로 새로운 밈 코인인 봉크다. 봉크는 태생 자체부터가 솔라나 생태계를 부활시키겠다는 목표를 갖고 만들어진 코인이다. 솔라나 보유자에게 전체 발행 물량의 50%를 무상 제공(에어드랍)하면서 등장한 봉크는 이후 토큰 가격이 상승하면서 솔라나 생태계에 매우 큰 자금을 안겨줬다. 솔라나의 가격 하락으로 발생한 손실을 봉크의 가격 상승으로 일부 만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회복된 솔라나 생태계 내 자금은 솔라나의 가격 하락 후 멈췄던 새로운 서비스 개발과 마케팅 활동을 재개하는 원동력이 됐다. 재개된 개발 움직임은 솔라나에 활력을 불어넣어 솔라나 가격이 다시 오르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같은 순환 구조로 솔라나는 2023년 바닥을 짚고 올해 가격이 저점 대비 거의 열배가 올라 부활에 성공했다.

밈 코인이 이처럼 위기에 빠진 프로젝트를 부활시킬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자 시장의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재미와 관심을 토큰으로 구체화한 밈 코인이 암호화폐 생태계를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솔라나에서는 봉크에 이어 도그위프햇, 뮤 등이 성공적으로 발행되면서 생태계 활성화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솔라나 이외에도 페페와 같은 밈 코인들이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의 영원한 숙제, 거버넌스


밈 코인은 그 인기와 별개로 거버넌스 측면에서 가상자산 업계에 또다른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주로 주식회사에서 주주와 경영자간의 역학에 관한 것으로 논의되는 거버넌스는 가상자산에서는 풀리지 않는 난제와 같다. 주식회사에서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함으로써 자본 조달을 용이하게 하고 소유권 이전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분명하다. 그러나 가상자산에서는 이같은 전제 조건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새로운 거버넌스를 수립해야 한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만 봐도 소유 주체와 경영 주체를 딱 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주된 이해관계자로 채굴자를 들 수 있지만 이들은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운영을 담당하면서 그 댓가로 알고리즘에 의한 보상을 받아가기 때문에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경영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보긴 어렵다. 유틸리티 코인인 이더리움은 플랫폼 내 재화의 교환 수단을 표방하기 때문에 코인을 보유한다 해서 주식과 같이 거버넌스에 영향을 주는 투표 권한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같은 속성으로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경영상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울만한 주체를 설정하기가 쉽지 않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투표 권한을 제공하는 거버넌스 토큰을 별도로 발행하거나 탈중앙화 자율조직(DAO)을 조직해 거버넌스를 스마트 컨트랙트화하는 등 새로운 거버넌스를 수립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특성상 가상자산만의 거버넌스 구조를 수립하기도 어렵고 높은 효과를 거둔 사례도 딱히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밈 코인은 여기에 추가 개념을 부여하고 있다. 커뮤니티의 재미와 관심이 구체화된 것인만큼 토큰 매수를 지지 또는 동의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등장한 관심경제라는 개념에서는 관심과 가치를 대등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밈 코인 구매는 밈 코인에 대한 관심을 가치화한 것으로 거버넌스 측면에서 지지와 동의로도 간주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가뜩이나 기존 주식회사와 다른 거버넌스에 차이점을 더욱 부각시킨다. 밈 코인이 맘에 들면 사고 맘에 들지 않으면 판다. 어찌보면 투표에서 안건에 따라 찬성하면 매수, 반대하면 매도하는 것처럼 볼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매도한다는 것은 투표의 반대라기보다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찬성, 반대가 아니라 관심, 무관심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투표 안건을 상정한 운영 주체가 플랫폼과 같은 성격이라면 떠나가는 사용자를 잡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주식 회사라면 주가 하락만 감수하면 된다. 즉 투자자의 매수, 매도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운영 주체가 자신들을 무엇으로 정의하는지에 따라 좌우되며 그 결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현재 대다수 밈 코인들의 운영 주체들은 플랫폼과 주식 회사 두가지로 놓고 볼 때 플랫폼보다는 주식 회사 쪽에 가깝다. 사용자들을 잡기 위해 플랫폼의 활용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기보다 매수로 대변되는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는 밈 코인 자체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운영하는 데 보다 높은 자유도를 부여한다. 맘에 안들면 팔고 떠나면 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운영 방식 또는 전략에 대한 반대보다는 매도를 선택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방어만 가능하다면 창업자의 의지를 관철하는 데 더할나위 없이 좋은 거버넌스인 셈이다.


새로운 거버넌스? 투자자 권리 보호?


그러나 이같은 거버넌스의 문제는 밈 코인의 주요 투자자들이 개인 투자자임을 감안한다면 큰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개인 투자자들이 주주 권리 등에 관심이 낮음은 주식 시장에서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지난 2021년 미국 주식 시장은 주식 거래 플랫폼인 로빈후드의 인기에 힘입어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에 대거 진입하면서 전례 없는 '밈 주식'의 열풍에 휩싸였다. 게임스톱, AMC 등이 개인 투자자들의 매매 급증으로 가격이 널뛰기를 뛰었다. 

주식 시장에서는 관심에 기반한 매매 급증이 주식회사에 대한 주주로서의 권리 행사로 이어질 것인지 여부에 관심이 높아졌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예일대학의 드루브 아가왈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들은 주식 거래 자체를 재미로만 했을 뿐 주주 제안과 같은 권리에는 무관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밈 주식 회사의 주주제안을 조사했을 때 베드 배쓰 앤 비욘드라는 단 하나의 회사를 제외하고는 전무한 결과를 보였다.

이는 매매를 주로 하는 주주와 특정 목적에 따른 장기 보유를 하는 주주간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주주간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시장의 공정성에도 위배되는 결과를 낳는다. 기업 지배를 위한 창업자 또는 대주주가 자신들의 경영에 찬성하면 매수하고 반대하면 매도하라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게 된다. 특히 투자자에 대한 제한이 없는 공개 주식 시장, 그리고 가상자산 시장에서 투자자간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가상자산 업계에서 유틸리티 코인에 부재한 거버넌스를 구체화하기 위해 투표 권한이 포함된 거버넌스 코인이 등장한 이후 관심 경제에 기반한 새로운 거버넌스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가벼이 넘기기 어렵다. 특히 현재 비트코인을 제외한 대다수 코인들의 운영이 탈중앙화라는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을 이어가지 못하고 중앙화된 발행 주체들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좌지우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모델이 등장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밈 코인의 거버넌스는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밈 코인 역시 도지코인의 일론 머스크 사례처럼 특정 주체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구조적인 방책이 등장해야만 관심 경제에 기반한 새로운 거버넌스의 효과가 더 크게 발휘되고 이를 통해 개인 투자자들의 권리도 보호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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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영
ZDNet코리아 및 매일경제 기자, 디스트리트 편집국장을 거치며 디지털자산과 진보된 미래를 집중 탐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매경미디어그룹의 블록체인 전문 자회사인 '엠블록컴퍼니'에서 최고전략담당자(CSO)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에서 과학저널리즘을 전공하고, 한양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에서 재무금융전공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