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더리움이 지난 9월 단행한 머지(Merge) 업그레이드에 관심 커져
- 차세대 이더리움 2.0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
- 운영 시스템이 금융 구조로 바뀌어 금융시장과 연계 커져
- 디파이(De-Fi)로 인한 파괴적 혁신의 연착륙 위해 노력해야 할 때
'22년 9월 기준으로 전세계 코인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ETH)이 지난 9월 머지(Merge) 업그레이드를 단행하자 가상자산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머지 업그레이드를 시작으로 이더리움 재단이 몇년에 걸쳐 진행될 이더리움 2.0으로의 진화에 나서 그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되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는 작년 말부터 시작된 가격 하락, 그리고 지난 5월 발생한 '테라' 사태로 꽁꽁 얼어붙어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자산 시장의 주요 축으로 자리잡은 탈중앙화금융(이하 '디파이(De-Fi)')은 여전히 기존 금융 시장을 파괴적 혁신으로 이끌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머지 업그레이드는 디파이의 핵심 플랫폼인 이더리움이 차세대로 나아가는 시작이기 때문에 면밀하게 뜯어볼 필요가 있다.
| 이더리움 2.0의 시작, 머지는 무엇인가
머지 업그레이드는 이더리움 2.0의 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난 2020년 진행된 비콘체인(Beacon Chain) 출시를 이더리움 2.0의 시초로 볼 수 있지만 비콘체인은 기존 이더리움과 별개로 동작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차세대 진화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머지 업그레이드부터는 기존 이더리움도 바뀌기 때문에 이더리움 2.0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머지 업그레이드의 핵심은 이더리움의 합의 알고리즘을 작업증명(PoW)을 지분증명(PoS)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더리움은 지난 2015년 첫 개시 이래 비트코인과 같은 PoW 합의 알고리즘에 따라 네트워크를 운영했기 때문에 채굴자들이 네트워크 운영에 필요한 노드를 가동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코인을 받아가는 구조였다.
이같은 구조는 참여자가 많지 않은 초기에는 적절하게 운영됐지만 가상자산 시장에 관심이 높아지고 채굴자들이 늘어나 경쟁이 격화되면서 보상을 받기 위해 운영해야 하는 컴퓨팅 자원이 높아져 에너지 낭비와 그에 따른 환경 파괴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더리움 재단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의 알고리즘의 변경을 오랜 기간 동안 연구했고 다년간의 준비 끝에 이번 머지 업그레이드를 통해 합의 알고리즘의 변경에 성공했다.
합의 알고리즘이 PoW에서 PoS로 변경됨에 따라 이더리움의 핵심 운영 구조 또한 이전과 100% 바뀌었다. 가장 먼저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블록 생성과 검증을 맡아왔던 채굴자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대신 최소 32ETH를 수탁받은 검증자들이 기존 채굴자들의 역할을 수행하고 블록 생성, 검증에 대한 보상을 수령한다. 또 채굴 경쟁이 줄어든만큼 보상으로 제공되는 코인의 수도 대폭 줄어들었다.
이더리움 재단은 머지 업그레이드에 이어 향후 서지, 버지, 퍼지, 스플러지 업그레이드를 진행할 계획이다. 샤딩 기술에 기반한 네트워크 처리 용량의 확대, 처리 성능 향상을 위한 데이터 압축과 효율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재단측은 머지 업그레이드의 성공으로 앞으로 계속될 이더리움 2.0 개편을 위한 후속 업그레이드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보상 감소, 주식 유통량 축소와 같나?
머지 업그레이드로 당장 이더리움의 시중 유통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금융투자시장에서 유통량 감소는 희소성을 높여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기대로 머지 이전 이더리움 가격은 약 2달만에 50% 가까이 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머지 업그레이드가 성공적으로 완료된 이후에는 고점 대비 약 20% 하락하면서 기대감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 역시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라는 금융투자업계의 격언과 일맥상통한다.
이더리움을 포함한 가상자산 시장이 기존 금융투자 시장과는 다른 규제와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이처럼 금융투자시장의 상식과 일부 부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머지 업그레이드로 시작된 이더리움 2.0의 거버넌스가 채굴자들로 구성된 기존 이더리움의 거버넌스보다 금융 시스템에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다.
채굴자의 역할을 대체하는 검증자가 되려면 최소 32ETH를 예치해야 한다. 이같은 방식은 은행에 현금을 예금하고 이자를 받는 형태와 매우 유사한 측면이 있다. 또 각 검증자는 블록 검증, 생성용 노드의 운영에 필요한 고정비용을 산출하고 이를 충당할 수 있는 보상, 즉 이자를 계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연스럽게 필요한 예치 총량, 즉 예금도 계산을 해내야 한다. 자산운용 업계의 사업 모델과 상당히 비슷하다. 기존 채굴자들이 채굴을 위한 기반 시설을 확충하면서 그에 비례하는 코인 보상이라는 매출을 올렸다면 지금은 검증자들이 자산을 유치하고 운영하면서 그에 비례하는 보상을 받는다. 제조업 구조에서 금융업의 구조로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여기에 이더리움은 이미 디파이의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잡고 있다. 머지 이전 이더리움에 기반한 디파이는 채굴자와 별개로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으로만 개발, 운영돼 이더리움을 활용한 서비스의 일부로 국한됐다. 하지만 채굴자가 검증자로 대체되면서 향후에는 검증자들이 노드 운영과 함께 디파이의 주류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럴 경우 이더리움의 핵심 운영까지 디파이와 연계되면서 디파이 시장이 현재보다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디파이에 근간한 가상자산 시장도 기존 금융투자 시장과 보다 밀접하게 연계되고 그에 맞춰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 머지가 금융투자업계에 주는 시사점
기성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가상자산 시장을 아직까지 신생 투자 시장의 일부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는 특히 비트코인을 어떤 부류의 자산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트코인이 내재가치가 제로라는 유명 경제학자의 주장과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는 투자 전문가들의 주장이 팽팽히 맞부딪치고 있지만 정작 가상자산 시장이 금융 시장에 미칠 파괴적 혁신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머지 업그레이드로 인한 이더리움의 변화가 시사하는 것처럼 가상자산 시장은 매우 빠른 속도로 기존 금융투자 시장과 유사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스마트 컨트랙트 프로그래밍에 기반한 디파이와 합의 알고리즘의 변화에 따른 거버넌스의 개편이 자리잡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이 보다 금융 시장과 가까운 형태로 운영될 때 속도와 효율성으로 무장한 디파이가 금융 시장을 잠식하는 시간도 좀 더 당겨질 것이다.
파괴적 혁신이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경착륙을 시도하기 전에 빠른 분석과 적절한 규제로 연착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지혜가 업계에 필요한 시점이다. “끝”.